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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0여 년 쌓아올린 금단의 벽 허물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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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작성자 청라닷컴 댓글 0건 조회 236회 작성일24-09-0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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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 년 쌓아올린 금단의 벽 허물어지다

 

2024.09.09 [기호일보] 우제성기자 godok@kihoilbo.co.kr

 

부평 ‘캠프마켓’ 인천시민의 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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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담벼락과 녹슨 철조망 너머 잊혀져야만 했던 금단의 땅. 그 땅이 다시 우리의 품에 안겼다.

캠프마켓(Camp Market). 이 곳은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닌,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설움과 모욕이 투영된 ‘역사의 장(場)’이다. 본보는 오는 11일 ‘2024 캠프마켓 반환 기념행사’에 맞춰 캠프마켓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반환 과정을 되짚고 반환 의의와 이후 과제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캠프마켓의 역사는 일제 조병창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캠프마켓이 자리한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일대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항의하며 자결한 대한제국기 관료이자 군인인 민영환의 소유였다. 하지만 이 땅은 모종의 이유로 지난 1907년 한일신협약 조인에 뜻을 같이한 일곱 친일파인 ‘정미칠적(丁未七賊)’ 중 한 사람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송병준이 차지하게 된다.

 

1920년대부터 이 땅은 일제 조선총독부에 관리에 놓이게 된다. 이 무렵 서울 용산 일대에 주둔 중이던 일본군 제20사단이 이 땅을 사격장으로 사용했다. ‘반환 84년’의 기준이 되는 인천일본육군조병창은 1939년에야 조성된다. 일제는 1945년 패망 때까지 이 곳에서 침략전쟁을 위한 병기와 탄약, 군 차량 및 항공기 부품 등을 제조하고 수리했다. 이 과정에서 연간 약 1만 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로 동원되거나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채 노역에 시달렸다. 1945년 연합군의 승리로 일제가 물러가면서 이곳은 미 제 24군수지원단이 점령하고 군수기지로 쓰이게 된다. 1950년대 초 미군은 캠프마켓을 포함한 주변 7개의 캠프를 묶어 ‘애스컴 시티(ASCOM City)’로 명명한다.

 

196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던 캠프마켓은 1973년 애스컴 시티 해체와 기지 내 주요 기능 이전으로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됐다. 일제에 이어 미군까지,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군사기지화해 갈 수 없는 금단의 땅인 ‘캠프마켓’의 반환 운동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 1996년부터다. 당시 부평역 광장에서 개최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16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땅 부평 미군기지를 되찾자’라는 구호가 처음 등장했다. 이후 가톨릭계를 비롯해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 등이 함께 반환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을 벌였다.

 

캠프마켓을 되찾기 위한 지속적인 범 시민운동의 전개 속에 지난 2002년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이 확정됐고, 지난 2019년 총 21만6천㎡ 규모의 캠프마켓 A·B 구역에 대한 반환이 이뤄졌다. 지난해 12월에는 정부가 제빵공장과 창고 등이 포함된 캠프마켓 D구역까지 반환에 합의하면서 캠프마켓 반환이 온전히 마무리됐다. 캠프마켓의 반환은 단순히 잃었던 땅을 되찾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캠프마켓은 지난 100년 동안 일제 침략과 냉전의 역사를 관통하는 상징적 공간이다. 전문가들은 캠프마켓을 어두운 역사의 증거로, 제대로 된 조사와 보존 과정을 통해 후대에 알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평문화원 관계자는 "캠프마켓은 우리의 아픈 역사인 일제 식민지 시절을 증거 하는 전쟁 유적"이라며 "어두운 역사가 실제했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역사적 관점에서 캠프마켓을 조사·보존하고 널리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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