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생전 웃으며 장례 치르고, 오늘 가족끼리 배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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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작성자 클래식 댓글 0건 조회 1,845회 작성일21-08-28 08:20본문
생전 웃으며 장례 치르고, 오늘 가족끼리 배웅했어요
2021.08.26 [인천일보]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변화하는 장례문화]
점점 유교사상보다 합리성 우선, 코로나에 무빈소 등 가족장 늘어
신개념 드라이브 스루 조문부터, 직접 부고장 쓰는 생전장례 생겨
'죽지 않고 살아있을 때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 장례식에 오세요. 죽어서 장례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전립선암 투병 후 2년 전 세상을 떠난 고(故) 김병국씨의 부고장 내용이다. 부고장에 적힌 내용치고는 여느 부고장들과 달라 보인다. 무엇보다 그가 직접 써 내려 간 부고장이라는 것.
고(故) 김병국씨는 지난 2018년 8월 고인이 돼 치르는 장례가 아닌 임종 전 가족, 지인과 이별 인사를 나누는 '생전 장례식'을 열었다. 이는 평소 김씨가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길 희망했기 때문이다.
검은 상복 대신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와 달라는 요청도 잊지 않았다. 생전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은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기보다 마치 축제의 한 장면처럼 밝은 표정으로 웃고 떠들며 김병국씨와의 추억을 회상했다. 그는 그렇게 바람대로 '능동적인 마침표'를 찍은 뒤 세상을 떠났다.
장례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들이닥친 팬데믹은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고 허례허식의 유교적 사상을 기반으로 했던 우리의 장묘, 장례 문화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매장
화장
수목장
매장문화에서 디지털추모관까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장묘문화는 매장 문화가 주류를 이뤘다. 매장 중심의 문화에서 화장 문화로 정착하게 된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로 SK그룹의 총수였던 고(故) 최종현 회장이 거론된다. 그는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장묘에는 매장 대신 화장을 해 줄 것을 주문했고 그의 유언에 따라 1998년 임종 직후 화장됐다. 이때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가 발족했고 화장 문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됐다.4년 전 작고한 고(故) 구본무 LG회장도 매장 장묘 대신 '수목장'을 택했다. 이는 유교적 사상이나 가치보다 실용적이면서도 합리적인 형태로 장묘 문화가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 예식 문화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한동안 '스몰 웨딩'이나 '하우스 웨딩'과 같은 작은 결혼식이 붐을 이뤘던 것처럼 우리의 장례 문화도 일반 장례식보다 경제적인 '작은 장례식'을 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특히 '작은 장례식'은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장례의 대안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작은 장례식은 기존 3일장 대신 1일장 또는 무빈소 장례 등 축소해 운영하거나 가족과 친인척들만 자리하는 '가족장'의 형태가 선호되고 있다.
이색적인 장례식도 생겨났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모임이 어려워지면서 자동차를 타고 조문하는 형태의 '드라이브 스루 장례'나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추모관' 같은 신개념 조문 문화도 생겨나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로 바뀐 장례문화는 긍정적인 평가를 낳고 있다. 공공의창·웰다잉시민운동·한국엠바밍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작은장례문화'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10명 중 6명이 '긍정적이다'고 평가했다. 이들 가운데 37.9%는 '가족장 등 새로운 장례문화 확산'을 긍정적 평가 이유로 꼽았다. 또 이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장례 문화는 이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꽃잠 유종희 대표]
“관행·규모 상관없이, 서로 잊지 못할 작별한다면 훌륭한 의례”
“허례허식을 생략하고 장례식의 본질에 집중한 작은 장례식 문화를 만들어나가고자 합니다. 고인의 마지막 삶과 가는 길에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꽃잠 유종희 대표는 기존의 획일적인 장례가 아닌 '사람'다운 장례를 고민하면서부터 작은 장례식을 기획했다. 장례식의 긴 절차와 막대한 비용이 점차 부담스러운 일이 된 것도 소규모 장례식이 확대되는데 한몫하고 있다. 요즘같이 조문이 어려워진 때 유 대표가 기획한 '작은 장례식'은 코로나 시대 장례문화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획일적이고 엄격한 장례식의 관행을 강요하기보다 변화의 시대에 맞춰 허례허식을 생략하고 장례식 본질에 집중한 작은 장례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실제 꽃잠에서는 합리적인 장례 서비스를 위해 '화장식', '하루장', '가족장' 등 문상객 규모나 빈소 차림 유무에 따른 작은 장례식을 유치하고 있다. 유 대표는 코로나19 이후로 작은 장례식 문의가 이어지면서 바쁜 하루 일과를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지난해 전년 대비 10배 이상의 문의가 늘었습니다. 그만큼 규모를 축소하고 가족들끼리 장례를 치르는 분들이 늘어난다고 설명할 수 있겠지요. 가족장이 늘어나면서 조문객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장례업계에도 많은 변화를 직면하는 중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작은 장례식의 수요가 단순히 가격에 민감해서 혹은 무연고와 같이 불가피한 선택으로 증가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유 대표는 종종 유족들을 만나 직접 장례 절차에 대해 상담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미처 준비하지 못한 유족들은 장례 설계가 큰 보탬이 된다. 최근 들어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려는 이들의 문의 또한 늘고 있다고 유 대표는 전했다. “상담하면서 어느 분의 장례를 준비 중 인지에 대해 가장 먼저 묻게 됩니다. 한번은 의뢰한 분께서 '접니다'라고 답하셨고 자신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셨습니다. 의뢰인은 지금의 통화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아직도 그 말이 귓가에 맴도네요. 결국 의뢰인의 뜻에 따라 장례를 치르게 됐습니다.” 유 대표는 '웰다잉', '웰엔딩' 문화가 정착돼 가는 가운데 우리의 장례 문화는 작은 장례식이나 생전 장례식을 준비하는 형태로 변모할 것이라 전망했다.
“코로나의 등장으로 장례 산업 현장에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작은 장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사실입니다. 50인 이상 모이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은 규모로 장례를 치르는 방법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많은 분이 조문객 또는 상주로서 작은 장례식을 긍정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에도 작은 장례식은 확대될 것으로 보입니다. 규모가 작더라도 혹은 그 시점이 생전이라 하더라도 서로에게 잊지 못할 작별을 맞이하는 시간을 포함한다면 그것만큼 훌륭한 의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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